
1. 개요
영화 데드폴(Deadfall, 2012)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 슈테판 루조비츠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에릭 바나, 올리비아 와일드, 찰리 허냄, 케이트 마라, 트리트 윌리엄스, 그리고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시시 스페이섹과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등 내로라하는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끝없이 펼쳐진 미국의 북부 미시간주 숲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대자연을 배경으로,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인물들의 절박한 생존과 추격전을 다루고 있다. 카지노 무장 강도 사건을 일으키고 캐나다로 도주하려는 남매, 억울한 과거를 딛고 부모님과 화해하기 위해 고향으로 향하는 전직 복서,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수사관으로서 인정받고자 고군분투하는 여경 등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추수감사절이라는 특별한 연휴에 한 공간에 모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서스펜스와 비극을 한 편의 서사시처럼 엮어낸 작품이다.
2. 줄거리
매서운 눈보라가 내리치는 어느 삭막한 겨울날, 애디슨(에릭 바나)과 라이자(올리비아 와일드) 남매는 일당과 함께 대규모 카지노를 털고 현금을 챙겨 캐나다 국경을 향해 맹렬하게 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끝없는 눈길을 달리던 중 갑작스러운 야생동물의 출현으로 인해 그들이 타고 있던 차량이 전복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고, 일행 중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 현장을 발견하고 수습을 위해 다가온 고속도로 순찰대원마저 애디슨이 우발적으로 사살하게 되면서, 단순 무장 강도였던 이들의 상황은 경찰 살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범죄로 악화된다. 결국 두 사람은 경찰의 대대적인 포위망과 추격을 분산시키기 위해 국경 근처에서 다시 만나기로 굳게 약속하고, 험난한 눈보라를 뚫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한편,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막 가석방된 전직 올림픽 복서 제이(찰리 허냄)는 추수감사절을 맞아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부모님이 계신 고향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폭설 속에서 도로를 달리던 제이는 추위에 떨며 얇은 옷차림으로 홀로 눈길을 걷고 있던 라이자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그녀를 자신의 차에 태워준다. 두 사람은 심각한 기상 악화로 인해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고 인근의 휴게소와 허름한 모텔에 머물게 되는데, 이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깊은 호감을 느끼며 급격히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라이자는 통화가 되지 않는 오빠 애디슨에게 제이의 본가 주소를 음성 메시지로 남기며 그곳에서 무사히 합류하자는 말을 전한다.
같은 시각, 허벅지 관통상과 동상의 고통을 참으며 눈 덮인 숲을 헤치고 국경을 향해 걷던 애디슨은 우연히 외딴 오두막을 발견한다. 그곳에서는 한 남성이 자신의 아내와 어린 딸에게 심각한 수준의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과거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했던 자신과 동생 라이자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떠올린 애디슨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폭력적인 가장을 처단하여 모녀를 구해낸다. 이 사건 직후 애디슨은 스노모빌을 탈취하여 산악지대의 험난한 지형을 이용해 경찰의 거센 추격망을 뚫고 라이자가 알려준 제이의 부모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추적하는 지역 보안관 베커(트리트 윌리엄스)와 그의 딸이자 부하 경관인 한나(케이트 마라)의 이야기도 교차 전개된다. 베커는 딸인 한나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찰로서의 능력을 철저히 무시하며 위험한 수사 현장에서 고의로 배제하려 하지만, 한나는 진정한 경찰관으로서의 사명감과 특유의 끈기를 발휘하며 단독으로 애디슨의 뒤를 바짝 쫓는다. 결국 애디슨이 한발 먼저 제이의 부모님 집에 도착하여 평화롭던 노부부를 인질로 잡고 통제권을 쥐게 된다. 뒤이어 집에 도착한 제이와 라이자, 그리고 이들의 행적을 완벽하게 추적해 온 한나와 베커 보안관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이면서 가장 평화로워야 할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는 끔찍하고도 슬픈 인질극의 무대로 변모한다.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대치 상황 속에서 다혈질적인 베커 보안관의 섣부른 행동으로 무차별적인 총격전이 벌어지고, 라이자는 폭주하며 멈출 줄 모르는 오빠 애디슨을 제지하기 위해 결국 자신의 손으로 그를 쏘며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3. 영화의 특징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 하얗게 얼어붙은 대자연의 풍광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붉은 피와 폭력성이 극명하고도 잔혹한 대비를 이룬다는 점이다. 캐나다 퀘벡의 실제 혹한 속에서 촬영된 눈보라와 설원은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으로 머무는 것을 넘어, 등장인물들을 육체적, 심리적으로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압박감을 극대화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자 캐릭터로 작용한다. 시야를 가리는 하얀 눈보라와 끝없이 펼쳐진 순백의 공간은 광활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도망칠 곳 없는 숨 막히는 폐쇄적인 느낌을 주며 극의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훌륭한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더불어,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용 범죄 스릴러를 넘어서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울타리가 가지는 양면성과 파괴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극 중심에 있는 애디슨과 라이자 남매는 끔찍한 가정폭력의 생존자로서 서로를 지켜내야만 했던 과거 때문에 서로에게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왜곡된 가족애의 표본을 보여준다. 주인공 제이와 그의 아버지 쳇 역시 겉으로는 평화롭고 평범해 보이지만, 과거의 불미스러운 사건과 오해로 인해 소통이 완전히 단절된 상처 입은 부자 관계다. 또한 지역 보안관 베커와 그의 딸 한나 부녀는 가부장적인 권위의식과 성차별적 편견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심각한 갈등과 균열을 겪고 있다. 이처럼 각기 다른 결핍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지닌 세 가족의 서사가 교차 전개되다가, 미국 문화에서 가장 가정적이고 화목해야 할 공간인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폭력적으로 충돌하는 이야기 구조는 관객에게 강렬한 아이러니와 극적인 슬픔을 동시에 선사한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할리우드 명품 배우 에릭 바나가 선보이는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악역 연기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관전 포인트다. 그가 열연한 애디슨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의 살인도 서슴지 않는 차갑고 잔혹한 범죄자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과 같은 가정폭력 피해자인 연약한 모녀 앞에서는 한없이 깊은 연민과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며,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을 지닌 인물이다.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 그의 서늘하면서도 슬픈 캐릭터는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극 전체를 매우 묵직하고 밀도 있게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4. 감상평
영화 데드폴을 감상하며 머릿속에 가장 깊게 맴돌았던 감정은, 영하의 차가운 눈밭 위로 뜨겁게 엉켜버린 인간의 처절한 욕망과 어긋난 가족애가 만들어낸 씁쓸한 비극이었다. 겉모습은 총격전과 차량 추격, 인질극을 내세운 긴장감 넘치는 할리우드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처받고 억압된 영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과 해방을 갈망하며 몸부림치는 처절하고 가슴 시린 가족 드라마가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눈보라 속을 도망치는 남매의 여정이 다른 범죄 영화들처럼 결코 통쾌하거나 짜릿하게 다가오지 않고 시종일관 가슴을 짓누르는 먹먹한 슬픔을 자아내는 이유도 바로 인물들이 짊어진 과거의 무게 때문이다.
특히 후반부를 장식하는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 장면은 단연코 이 영화의 잊을 수 없는 백미라 할 수 있다. 일 년 중 가장 따뜻하고 평화로워야 할 명절의 식탁이 무자비한 인질범과 공포에 떠는 인질, 그리고 각자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와 분노를 품은 이들의 숨 막히는 대치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서늘한 공포감과 엄청난 긴장감을 유발한다. 평생 동안 오빠의 맹목적이고 강압적인 보호 아래에서 숨죽여 살아왔던 라이자가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신의 삶과 새로운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내려야만 했던 마지막 총격의 결단은 진하고도 슬픈 여운을 남긴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가족의 끈은 질기다고들 말하지만, 때로는 그 잔혹한 피로 맺어진 사슬을 과감히 끊어내야만 비로소 주체적인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서늘하고도 현실적인 진리를 일깨워주는 듯했다.
슈테판 루조비츠키 감독은 쫓고 쫓기는 단순 명료한 추격전의 뻔한 공식을 탈피하고자 노력했다. 대신 각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심리적 배경과 감정의 골을 밀도 있게 조명함으로써 서사에 문학적인 깊이를 더했다. 비록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우연에 지나치게 기대는 플롯이 일부 존재하여 상황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에릭 바나와 찰리 허냄, 올리비아 와일드 등 훌륭한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앙상블과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압도적인 설원 로케이션 액션이 이러한 단점들을 충분히 가리고도 남는 매력을 발산한다.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웰메이드 스릴러를 선호하는 영화 팬들은 물론이고,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과 끊어낼 수 없는 가족 관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해보고 싶은 이들에게도 기대 이상의 충족감을 줄 수 있는 수작이라 평가하고 싶다. 스크린 위로 펼쳐진 눈부시도록 하얀 눈밭, 그리고 그 위에 선명하게 찍힌 그들의 붉은 핏빛 발자국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관객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