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개요
영화 '마녀'는 2018년 개봉한 미스터리 액션 영화로, '신세계', 'V.I.P.' 등 선 굵고 강렬한 장르물을 연출해 온 박훈정 감독의 야심작이다. 개봉 당시만 해도 한국 상업 영화계에서는 다소 생소하고 위험 부담이 컸던 '초능력자', '인간 병기'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SF 다크 판타지 히어로물을 한국적인 정서와 농촌이라는 이질적인 배경 속에 훌륭하게 녹여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특히 무려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신인 김다미를 원톱 주연으로 내세우는 파격적인 모험을 감행했으며, 조민수, 박희순, 최우식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베테랑 배우들이 극의 무게 중심을 잡으며 완성도를 높였다. 여성 캐릭터가 주도하는 서늘한 서사와 파괴적인 액션은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했으며,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기는 흥행 성공으로 프랜차이즈 영화로서의 가능성을 확고히 다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 줄거리
이야기는 10년 전, 의문의 사고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나간 비밀 연구 시설에서 시작된다. 피투성이가 된 채 홀로 시설을 탈출한 8살 소녀는 어느 한적한 시골의 노부부에게 발견된다.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모두 잃은 것으로 보이는 소녀는 '구자윤'이라는 이름을 얻고, 따뜻한 양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씩씩하고 밝은 여고생으로 자라난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자윤은 소가 값 폭락과 어머니의 치매 투병으로 점점 어려워지는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우승 상금 5억 원이 걸린 전국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생방송 무대에서 무의식중에 개인기로 선보인 특별한 마술, 즉 염력은 그녀를 더 이상 숨어 살게 두지 않았다. 방송을 본 정체불명의 인물들, 자윤을 '마녀 아가씨'라 부르며 묘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귀공자(최우식)와 과거 그녀를 통제했던 닥터 백(조민수), 그리고 무자비한 미스터 최(박희순) 일당이 자윤의 주변을 서서히 포위해 온다.
결국 평범한 일상과 가족을 지키려던 자윤은 이들의 끔찍한 위협에 못 이겨 과거의 연구소로 끌려가게 된다. 닥터 백은 자윤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주겠다며 의문의 약물을 투여하는데, 여기서 영화는 극의 판도를 뒤집는 엄청난 반전을 맞이한다. 사실 자윤은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기억을 잃은 적이 없었다. 자신이 가진 막강한 능력을 버티지 못해 뇌가 파괴되어 가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앓고 있었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살길을 찾기 위해 자신을 창조한 닥터 백 일당이 스스로 찾아오도록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를 펼쳤던 것이다.
자신을 통제하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약물을 손에 넣은 자윤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압도적이고 잔혹한 본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귀공자와 미스터 최 일당을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처참하게 무너뜨린 자윤은 연구소를 초토화시킨다. 이후 양부모에게 어머니의 병세를 늦출 수 있는 약을 남긴 채, 근본적인 치료제를 찾기 위해 더 거대한 배후인 닥터 백의 쌍둥이 동생을 찾아 떠나며 영화는 거대한 세계관의 서막을 알리며 끝을 맺는다.
3. 영화의 특징
첫 번째 특징은 단연 압도적인 '액션의 쾌감'이다. 기존 한국 액션 영화가 땀 냄새나는 묵직한 타격감이나 현실적인 맨몸 격투에 집중했다면, '마녀'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스피드와 파괴력에 집중한다. 초능력을 기반으로 한 인간 병기들의 싸움인 만큼, 총알을 가볍게 피하거나 보이지 않는 속도로 이동하며 벽과 천장을 부수는 등 할리우드 히어로물에서나 볼 법한 초인적인 액션을 세련되게 구현했다. 특히 후반부 밀실에서 벌어지는 핏빛 학살극과 귀공자와의 1대 1 대결 액션 시퀀스는 숨돌릴 틈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두 번째는 '변형된 프랑켄슈타인 서사'가 주는 장르적 쾌감이다.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생존을 위해 창조주를 찾아간다는 고전적인 모티프를 따르면서도,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주인공의 영악함이 돋보인다. 본 시리즈나 엑스맨처럼 평범한 삶을 동경하는 이형의 존재가 겪는 수동적인 내적 갈등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중반부 이후 사냥꾼과 사냥감의 위치가 완벽하게 뒤바뀌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불필요한 신파나 로맨스를 과감히 거세하고 철저히 목적과 생존에만 집중하는 서늘한 주인공의 모습은 극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세 번째는 주연 배우들의 미친 앙상블이다. 김다미는 극 전반부 부모님을 끔찍이 생각하는 순박한 시골 소녀의 모습에서, 후반부 본색을 드러낼 때의 섬뜩한 미소와 차가운 눈빛으로 완벽한 온도차를 보여준다. 이에 더해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이 완전히 거세된 미치광이 과학자를 열연한 조민수, 여유롭고 오만하지만 결국 압도적인 힘 앞에 굴복하는 귀공자 역의 최우식, 묵직하고 거친 카리스마를 뿜어낸 박희순까지 각 캐릭터의 독창성이 영화의 빈틈을 꽉 채운다.
4. 감상평
영화 '마녀'는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다크 히어로물이라는 장르를 박훈정 감독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여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수작이다. 초반부의 농촌 배경 전개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이는 후반부에 폭발하는 서스펜스와 액션의 카타르시스를 배가시키기 위한 아주 훌륭한 빌드업으로 작용한다.
치열한 일상의 무게에 지쳐있던 필자에게, 스크린 속에서 거침없이 적들을 찢고 부수며 휩쓸어버리는 구자윤의 모습은 통쾌함 그 자체였다. 특히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에서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회생활을 하며 수많은 난관과 복잡한 이해관계에 치이는 4050 세대에게도, 주변의 방해물들을 압도적인 능력으로 가볍게 돌파해 나가는 주인공의 거침없는 행보는 일종의 대리만족과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단순히 한 편의 오락 영화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방대한 세계관을 암시하며 끝나는 결말은, 자연스럽게 다음 시리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탄탄하게 직조된 서사와 숨 막히는 고강도 액션, 그리고 배우들의 소름 돋는 열연이 완벽한 삼박자를 이룬 '마녀'. 혹시라도 아직 이 작품을 접하지 못했다면 다가오는 주말, 시원한 맥주 한 캔과 함께 압도적인 액션의 향연 속으로 빠져보기를 강력히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