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개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영화 '괴물'이 개봉과 함께 관객들에게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선을 보이며 평단과 관객의 뜨거운 찬사를 받은 바 있다. 특히 이번 영화는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세 명의 거장, 즉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섬세한 연출, 사카모토 유지 작가의 치밀한 각본,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감독의 심연을 울리는 음악이 완벽한 공명감을 이루어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괴물'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고전 명작 '라쇼몽'을 연상케 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인물의 시점이 교차하며 진실의 다면성을 파헤치는 이 영화는, 우리가 믿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불완전한 인식에 불과한지를 묵직하게 묻는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더라도 각자가 서 있는 위치와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2017년작 '세 번째 살인'에서 보여주었던 진실의 모호함이라는 주제를,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일상적이고 가족적인 세계관 속에 다시금 투영한 야심 찬 시도라 할 수 있다.
2. 줄거리
영화의 도입부는 어둠이 깔린 밤, 화염에 휩싸인 빌딩의 모습을 관조하는 무기노 미나토와 그의 어머니 사오리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평온해 보이던 이들의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아들 미나토가 이상 행동을 보이면서부터다. 사오리는 아들의 옷이 더러워지거나 신발 한 짝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수상한 낌새를 채고, 급기야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미나토의 극단적인 행동과 내 뇌는 돼지의 뇌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듣게 된다. 이로 인해 사오리의 학대 의심과 확증 편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파트로 나뉘어 전개된다. 제1막은 어머니 사오리의 시점이다. 홀로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며 세탁소에서 일하는 그녀의 시간은 업무와 가사,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숨 가쁘게 흘러간다. 그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학교로 향하고, 미나토를 괴롭힌 가해자로 지목된 담임 호리 선생과 무책임해 보이는 학교 측에 분노를 터뜨린다.
제2막은 호리 선생의 시점이다. 사오리의 시점에서는 무능하고 폭력적인 교사로 비치던 그였지만, 그의 시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진실이 드러난다. 그는 갓 부임하여 어딘가 미숙하지만 나름대로 학생들을 지도하려 애쓰는 평범한 청년일 뿐이었다. 오히려 그는 미나토가 같은 반 친구인 요리를 괴롭힌다고 오해하고 있었으며, 책의 오탈자를 찾는 등 일상적인 여백을 가진 삶을 살고 있었다.
마지막 제3막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아이들, 미나토와 요리의 시점이다. 앞선 두 어른의 치열하고 복잡했던 시간과 달리, 아이들의 시간은 느릿하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숲속 깊은 곳에 방치된 선로 위 폐전철은 두 아이만의 비밀스러운 아지트가 되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폭력과 편견을 피해 온전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미나토는 요리를 감싸주다 괴롭힘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면서도 점차 요리에게 이끌리고, 자신 안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시점이 겹쳐지면서, 관객은 파편화된 사실들이 모여 완성되는 충격적이고도 슬픈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3. 영화의 특징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각지대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 인식의 한계를 철저하게 해부한다는 점이다. 사오리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전형적인 어머니이지만, 정작 아들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정체성의 혼란과 감정의 소용돌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녀는 내 아들은 피해자라는 굳건한 믿음의 사각지대에 갇혀, 아들의 거짓말을 맹신하고 호리 선생이라는 애먼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또한, 영화는 각 파트의 주인공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를 연출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오리의 시간은 쉴 새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반면, 호리 선생의 시간은 그보다는 약간의 여백을 가진 채 흘러간다. 반면 미나토와 요리의 시간은 뚜렷한 목적 없이 느긋하게 전개되며, 어른이 되면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 특유의 시간 감각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모티브로 삼은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외로운 두 소년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동화의 설정은, 영화 속 미나토와 요리가 폐전철에서 보내는 시간으로 치환된다. 이 폐전철은 괴롭힘도, 과잉보호도, 가정폭력도 없는 두 아이만의 세계인 동시에,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을 간직한 공간이다.
학교의 최고 책임자인 교장 캐릭터의 활용도 매우 독창적이다.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매뉴얼대로의 태도로 일관하며 분노를 유발하는 교장은, 사실 손주를 차로 치어 죽게 한 장본인이자 그 죄를 남편에게 덮어씌운 끔찍한 거짓말의 주체다. 그녀는 자신의 엄청난 죄책감 때문에 미나토의 거짓말을 추궁하거나 단죄하지 못하며, 오히려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는 것을 막으려는 역설적인 행보를 보인다. 감독은 교장의 시점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관객에게도 사각지대를 남기고, 우리 역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고 정죄하는 괴물이 아닌가라는 묵직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4. 감상평
영화 '괴물'을 보고 나면, 현실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결코 단순하거나 명쾌하지 않다는 뼈아픈 깨달음을 얻게 된다. 포스터에 적힌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방향을 이리저리 튼다. 처음에는 무책임한 학교와 폭력적인 교사가 괴물인 것처럼 보이고, 다음에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괴물로 비친다. 하지만 결국 진정한 괴물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인간의 오만함,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끔찍한 오해와 편견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하던 놀이에서 정체를 모르면 괴물이 되지만, 정체를 맞추면 괴물이 아니게 된다는 설정은 매우 상징적이다. 미나토와 요리에게 다가온 낯선 감정, 즉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신들의 모습은 스스로에게조차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괴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무도 없는 폐전철에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잣대로 재단된 행복을 강요하지만, 아이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진정한 행복은 어른들의 궤도 밖, 폭풍우가 몰아치는 선로 너머에 존재했다.
영화의 마지막, 폭풍우를 뚫고 쏟아지는 햇살 아래를 달리는 두 아이의 모습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다시 태어난 걸까라는 질문에 아니, 그대로야라고 대답하는 대화는, 세상의 편견에 억눌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겠다는 작고도 강력한 선언이다. 완전한 구원이나 극적인 화해 대신, 흙투성이가 된 채로 어른들의 궤도라는 선로를 이탈해 자신들의 길을 달려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어떤 완벽한 해피엔딩보다도 뭉클하게 다가온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의 정교한 사실과 사각의 묘사, 나가노현 스와의 맑은 공기처럼 투명감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 그리고 영화 전반에 깔려 마음을 적시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선율은 이 영화를 단연코 최고의 마스터피스로 반열에 올리기에 충분하다. 타인의 고통과 삶의 무게를 함부로 짐작하지 말라는 이 아름답고도 슬픈 경고는, 극장을 나선 후에도 오랫동안 관객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며,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세계에서 흉측한 괴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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