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영혼의 지도인가, 단순한 데이터인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들이 묻는 묵직한 질문.

1. 개요
2016년 개봉한 영화 '크리미널(Criminal)'은 화려한 캐스팅만으로도 영화 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케빈 코스트너, 게리 올드만, 토미 리 존스, 라이언 레이놀즈, 그리고 갤 가돗까지. 이름만 들어도 헐리우드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한 명배우들이 하나의 스크린 안에서 조우했다. 아리엘 브로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기억 이식'이라는 SF적 소재를 첩보 액션이라는 장르에 녹여내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는 단순히 악을 처단하는 액션 활극에 그치지 않는다.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뇌에 국가를 위해 헌신하던 최정예 CIA 요원의 기억을 이식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통해, 인간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진다. 타인의 기억이 내 머릿속을 지배할 때, 과연 나는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중심으로 숨 막히는 추격전과 가슴 저릿한 휴머니즘을 동시에 그려낸다.
2. 줄거리
CIA 런던 지국은 전 세계를 위협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개발한 해커 '더치맨'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와 접선하여 거액을 건네고 프로그램을 확보하려던 최정예 요원 빌 포프(라이언 레이놀즈 분)는 반정부 테러 조직 '헤임달'에게 납치당해 모진 고문 끝에 사망하고 만다. '더치맨'의 위치와 프로그램의 행방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 사라진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다급해진 CIA 런던 지국장 퀘이커 웰스(게리 올드만 분)는 뇌과학 권위자 프랭크스 박사(토미 리 존스 분)를 불러 비윤리적이고 위험천만한 실험을 감행한다. 바로 죽은 빌의 뇌 기억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식하여 정보를 캐내려는 것. 이 실험의 대상자로 선정된 인물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충동조절 장애를 가진 흉악범 제리코 스튜어트(케빈 코스트너 분)였다. 그의 전두엽 상태가 기억을 받아들이기에 최적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수술 후 깨어난 제리코는 극심한 두통과 함께 알 수 없는 환영에 시달린다. CIA는 즉각적인 성과를 원했지만, 제리코는 혼란 속에서 정보를 내놓지 못하고 이송 중 탈출을 감행한다. 사회로 나온 그는 본능적으로 빌의 기억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빌의 집 비밀번호를 자연스럽게 누르고 들어가 그의 아내 질(갤 가돗 분)과 딸을 마주하게 된 제리코. 평생 감정이라곤 없었던 그는 빌의 기억 속에 내재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느끼며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한편, 테러 조직 헤임달은 제리코를 추격하며 빌의 가족을 위협하고, CIA 역시 제리코를 쫓는다. 제리코는 빌의 기억을 더듬어 '더치맨'이 숨겨둔 돈가방과 프로그램의 위치를 찾아내지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결국 제리코는 빌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빌의 기억이 전하는 정의감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최후의 거래를 시도한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에게 프로그램을 넘겨주는 척하며 기지를 발휘해 그들을 일망타진하고, 빌의 가족을 구해낸다. 모든 사건이 끝난 후, 해변가에서 빌의 가족을 바라보는 제리코의 눈빛에는 더 이상 과거의 야수가 아닌, 한 인간의 따뜻한 영혼이 서려 있었다.
3. 영화의 특징
첫째, '기억 이식'이라는 소재를 통한 정체성의 탐구다.
기존의 첩보 영화들이 주인공의 신체적 능력에 집중했다면, '크리미널'은 뇌와 기억이라는 정신적 영역에 집중한다. 평생을 짐승처럼 살아온 제리코와 평생을 영웅으로 살아온 빌. 전혀 다른 두 인격이 하나의 육체 안에서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은 단순한 액션 쾌감 이상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제리코가 빌의 감정에 동화되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이 영화가 가진 주제의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신구 조화가 돋보이는 명배우들의 연기 향연이다.
케빈 코스트너는 거칠고 투박한 범죄자에서 점차 인간미를 찾아가는 제리코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의 공허한 눈빛이 점차 생기로 차오르는 과정은 압권이다. 여기에 게리 올드만은 특유의 히스테릭하고 강박적인 지국장 역할을, 토미 리 존스는 윤리와 의무 사이에서 고뇌하는 박사 역을 맡아 극의 무게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짧은 등장이지만 라이언 레이놀즈와 갤 가돗의 존재감 또한 영화의 감정선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
셋째, 긴박감 넘치는 액션과 섬세한 드라마의 조화다.
영화는 런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카체이싱과 총격전 등 첩보 액션의 미덕을 충실히 따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가족애라는 보편적인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차가운 첩보전의 세계와 따뜻한 가족 드라마가 교차 편집되며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감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4. 감상평
영화 '크리미널'은 제목 그대로 '범죄자'를 내세우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뇌리에 맴돈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제리코는 사회적으로 격리되어야 할 흉악범이었지만, 빌의 기억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면서 비로소 완성된 인간으로 거듭난다. 이는 육체보다 정신, 즉 기억과 감정이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케빈 코스트너의 연기 변신은 놀라웠다. <보디가드>나 <늑대와 춤을>에서 보여주었던 젠틀하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짐승 같은 본능과 뒤섞인 혼란스러운 내면을 거친 호흡으로 표현해냈다. 빌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괴로워하면서도, 그 기억 속의 감정에 이끌려 빌의 아내를 보호하려는 그의 모습은 묘한 연민을 자아냈다.
물론 뇌 이식이라는 설정 자체가 과학적 개연성 면에서 다소 투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CIA의 작전 수행 능력이 다소 무능하게 그려지거나, 테러리스트의 최후가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적 클리셰를 상쇄하는 것은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기억'이라는 소재가 주는 묵직한 울림이다.
결말부에서 제리코가 보여준 선택은 그가 더 이상 빌의 기억을 담은 '그릇'이 아니라, 그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주체적인 인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빌은 죽었지만 그의 사랑과 헌신은 제리코를 통해 영원히 살아남았다. 액션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따뜻한 위로가 숨어 있다.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봤다가, 의외의 먹먹함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될 영화, 바로 '크리미널'이다.
#영화크리미널 #크리미널 #케빈코스트너 #라이언레이놀즈 #게리올드만 #토미리존스 #갤가돗 #액션영화추천 #영화리뷰 #영화후기 #첩보액션 #기억이식 #SF스릴러 #영화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