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개요
1994년 브랜든 리 주연의 전설적인 명작 '더 크로우'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2024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 루퍼트 샌더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화 '그것(IT)'에서 페니와이즈 역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던 빌 스카스가드가 새로운 에릭 드레이븐 역을 맡아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상대역인 셸리 웹스터 역에는 영국의 유명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에프케이에이 트위그스가 캐스팅되었으며, 악역 로그 역은 대니 휴스턴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이번 2024년판 더 크로우는 제임스 오바의 원작 그래픽 노블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한 남자의 처절하고 잔혹한 복수극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다크 히어로 액션 판타지 로맨스 영화다. 불사신의 몸을 얻었으나 육체적인 고통은 고스란히 느낀다는 독특한 설정과 함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은 강도 높은 타격감과 유혈이 낭자한 고어 연출을 내세워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 것이 이 작품의 주된 특징으로 꼽힌다. 과거 브랜든 리의 유작이라는 비극적인 꼬리표와 오리지널의 거대한 명성에 짓눌리지 않고, 2024년의 시대상에 맞게 시각적 스펙터클과 퇴폐적인 미장센을 한층 강화하여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을 겨냥하고 있다.
2. 줄거리
어린 시절의 끔찍한 상처와 절망 속에서 어두운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 에릭은 어느 날 수용된 재활 센터에서 자신과 비슷한 영혼의 결을 가진 여성 셸리를 만나게 된다. 첫눈에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낀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며 깊은 사랑에 빠지고, 시설에서 함께 탈출하여 완벽한 행복과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그들의 달콤한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셸리는 수백 년 동안 무고한 사람들의 영혼을 사탄에게 제물로 바치며 영생을 누려온 악마적 존재 로그의 치명적인 비밀이 담긴 영상을 우연히 소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로그 일당의 끈질긴 추적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로그의 잔혹한 부하들에게 꼬리를 짓밟힌 에릭과 셸리의 은신처는 핏빛으로 물든다. 두 사람은 의문의 괴한들에게 무참히 제압당하고 끝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셸리가 과거 로그의 악한 권능에 휘말려 저질렀던 실수로 인해 죽음 이후 구원받지 못하고 끔찍한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생과 사의 경계인 연옥에 머물게 된 에릭은, 까마귀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영혼을 건 거래를 하게 된다. 셸리를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승으로 돌아가 로그 일당을 전부 처단하여 그녀의 영혼을 대신할 제물을 바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에릭은 까마귀의 저주이자 축복을 받아,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어도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몸으로 부활한다. 이승으로 돌아온 그는 창백한 피부와 기괴하고 짙은 화장을 한 채, 자신과 연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조직원들을 향해 자비 없는 학살을 시작한다. 총에 맞고 칼에 찔리면 뼈가 부러지는 육체적 고통을 온전히 견뎌내야만 하지만, 그는 오직 셸리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과 끓어오르는 복수심 하나로 자신의 고통을 무시한 채 로그의 본거지를 향해 전진하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른다.
3. 영화의 특징
본작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단연 압도적인 시각적 스펙터클을 앞세운 잔혹한 액션 시퀀스와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다크한 미장센이다. 주인공 에릭은 기존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적의 육체를 가진 것이 아니다. 그는 적들의 공격에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며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나약한 인간의 감각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며 좀비처럼 덤벼드는 그의 처절한 전투 방식은 관객에게 날 것 그대로의 타격감과 기괴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화려하고 우아한 오페라 공연장의 내부 무대와 그 밖의 로비 및 계단에서 벌어지는 에릭의 피 튀기는 살육전이 교차 편집되는 시퀀스는 이 영화가 자랑하는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우아한 클래식 선율과 유혈이 낭자한 선혈의 시각적 대비는 폭력의 미학을 극대화하며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또한 빌 스카스가드라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퇴폐미와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영화의 전반적인 색채를 완벽하게 장악한다. 그의 퀭한 눈빛과 마른 체형은 상실감에 빠진 남자의 위태로움을 실감 나게 표현하며, 크로우로 각성한 이후 보여주는 광기 어린 액션은 원작 캐릭터의 본질을 훌륭하게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보적인 킬러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다만, 서사의 전개 속도와 스토리의 개연성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지점도 뚜렷하다. 복수극의 감정적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초반부 에릭과 셸리의 로맨스 서사에 상당한 러닝타임을 할애하지만, 이 과정의 템포가 다소 느리게 전개되어 초반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서로의 목숨과 영혼을 바칠 만큼 깊어지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온전히 설득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존재하며, 1994년 원작이 가졌던 세기말적인 고스 록(Goth Rock) 분위기와 철학적인 무게감이 옅어지고 현대적인 스플래터 액션물로 노선이 변경되었다는 점에서 기존 팬들의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4.감상평
2024년판 더 크로우는 1994년작의 거대한 그림자와 브랜든 리라는 배우가 남긴 유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으나, 독립적인 킬링타임용 다크 액션 영화로 평가하자면 충분히 시각적인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언론과 평단의 평가는 각본의 깊이 부족으로 인해 다소 엇갈리는 추세지만, 스타일리시한 고어 액션 장르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특히 빌 스카스가드의 신들린 듯한 연기력과 육체적 헌신은 그가 왜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독보적인 호러 및 스릴러 특화 배우 중 한 명으로 불리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영화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한 남자의 찢어지는 슬픔이 분노와 살기로 변모하는 과정을 한 편의 거친 피보라로 치환하여 보여준다. 에릭이 온몸에 총탄이 박히는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무표정하게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은, 셸리를 향한 그의 맹목적인 사랑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얼마나 거대하고 무거운지를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비록 악당인 로그 일당의 캐릭터성이 다소 평면적이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의 서사적 촘촘함이나 미스터리 요소는 부족할지언정, 성인용 액션 영화가 갖춰야 할 원초적인 장르적 쾌감이라는 목적만큼은 충실하고 화끈하게 달성해 냈다.
정리하자면 이번 작품은 원작의 짙은 향수에 젖어 있는 올드 팬들에게는 서사적으로 다소 이질적이고 아쉬운 리메이크로 다가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과거의 짐을 내려놓고 불사신이라는 설정과 복수극이라는 단순명쾌한 플롯을 결합한 잔혹하고 기발한 액션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주말 저녁을 책임질 짜릿한 오락 영화로 다가갈 것이다. 사랑과 죽음,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넘나드는 에릭 드레이븐의 처절한 핏빛 여정은 빌 스카스가드라는 걸출한 배우의 미친 존재감과 함께 스크린에 강렬하고 매혹적인 인상을 남긴다. 복잡한 서사적 여운보다는 시원하고 파괴적으로 터지는 유혈 액션의 쾌감을 원한다면 일견을 권할 만한 수작이다.